이덕주 지음
주기철 목사 성역 백 주년 기념판
주기철: 사랑의 순교자
JU GI CHEOL: Martyr Amor
지은이 이덕주
펴낸곳 주식회사 홍성사
펴낸이 정애주
국효숙 김의연 김준표 박혜란 손상범
송민규 오민택 임영주 차길환
2023. 4. 10. 초판 1쇄 인쇄 2023. 4. 20. 초판 1쇄 발행
등록번호 제1-499호 1977. 8. 1.
주소 (04084) 서울시 마포구 양화진4길 3 전화 02) 333-5161 팩스 02) 333-5165
홈페이지 hongsungsa.com 이메일 hsbooks@hongsungsa.com
페이스북 facebook.com/hongsungsa
양화진책방 02) 333-5161
© 이덕주, 2023
ISBN 978-89-365-0387-1 (03230)
믿음이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음과 같이 진리의 열매를 위하여 스스로 죽는 것을 뜻합니다.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영원히 살아 있는 진리와 목숨을 맞바꾸는 자들을 우리는 믿는 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의 글들〉은 평생, 혹은 가장 귀한 순간에 진리를 위하여 죽거나 죽기를 결단하는 참 믿는 이들의, 참 믿는 이들을 위한, 참 믿음의 글들입니다.
소양 주기철 목사
진해시청에 보관된 주기철 제적등본
〈신생명〉에 실린 “기독교와 여자해방”
주기철 목사가 설립한 초량교회 소년면려회 회의록(1931)
주기철 목사가 윤치병 목사에게 보낸 편지(1931. 6.)
주기철 목사와 산정현교회 제직
〈기도지남〉에 실린 기도문 “겸손하기 위하여”
산정현교회에서 열린 평양노회 기사. 〈매일신보〉, 1938. 3. 25.
안용준 목사가 쓴 주기철 부부 기사. 〈파수군〉, 1952. 1.
주기철 목사와 산정현교회의 수난을 증언하는 번하이슬 선교 편지
주기철 목사 전기를 다시 쓰기까지
내가 처음 주기철 목사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0년 가을 장로회신학대학교 김인수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은 다음부터였다. 김인수 교수는 “주기철목사기념사업회에서 매년 한 차례 주기철 목사 기념 학술강좌를 여는데 2001년 4월 강좌 때 논문 한 편 발표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주기철 목사라면 일제 말기 신사참배 문제가 일어났을 때 어떠한 회유와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결국 옥중에서 순교한 인물로 교파를 떠나 한국 교회사를 대표하는 인물이 아닌가? 그런 인물이기에 단행본 전기만 해도 10권 넘게 나왔고, 그와 관련한 논문이나 글도 50여 편이 넘게 발표되었으니 새로운 무엇이 나올 것인가? 선뜻 쓰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주기철과 관련해 새로운 게 뭐가 있겠습니까? 자료가 새로 발굴된 것도 아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나 어떻게 합니까? 강좌는 해야 하고, 마땅한 인물은 없고… 해서 기념사업회 운영위원들이 협의한 결과 이번 강좌는 장로교 밖의 학자에게 부탁하기로 했습니다.
김인수 교수는 드러내놓고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는 “이미 장로교 학자들이 충분히 연구해 놓아서 새로운 것은 없겠지만 혹시 감리교 시각에서 다르게 볼 수 있을 것도 있을지 모르니 와서 시간을 메꿔달라”는 뉘앙스가 깔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주기철 목사가 장로교 목사여서 그러했겠지만 지금까지 주기철 관련 전기나 논문을 쓴 학자들은 모두 장로교 인사들이었다. 특히 장로교 계통 한국교회사 연구자치고 주기철 목사에 관한 글을 쓰지 않은 이가 없었다. 장로교 사학계, 신학계에 주기철은 학자로서 ‘등용문’ 같은 존재였다. 주기철목사기념사업회에서도 그동안 다섯 차례 학술강좌(매년 2~8명 발표)를 하면서 초빙한 교수들 역시 장로교 계통 학자 일색이었다. 그렇게 장로교 학자들이 모두 동원된 다음 처음으로 ‘장로교 밖’에서 연구자를 찾다가 감리교 학자인 내게 논문 발표 기회를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안을 고려할 가치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 확답은 하지 못하겠지만 자료를 검토한 후에 뭔가 새롭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 보이면 쓰겠다”며 한 주일만 여유를 달라고 했다.
교회사에서 ‘선행연구 검토’는 필수다. 김인수 교수와 전화를 끊고 나서 주기철 목사 관련 전기와 논문들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과연 연구결과가 많았다. 그런데 논문과 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발표된 주기철 관련 저작들이 나름대로 하나의 계통(trend)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연구자 개인에 따라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앞선 학자들의 연구 흐름에서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주기철 목사는 비타협적 보수주의 신앙인이었다. 성경 진리에 철저하여 이단 척결에 엄하였고, 비진리에 절대 타협하지 않는 강고한 신앙의 소유자였다. 그는 장로교, 칼빈주의 신학에 철저하였다. 칼빈주의 정통 교리에 충실하였고 교인 치리에 엄격했던 목회자였다. 비타협적 원리주의자였던 그가 일제시대를 살면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교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에게 순교는 숙명이었고 삶 자체가 순교지향적이었다.
이러한 해석의 틀을 창시한 첫 번째 인물이 김인서(金麟瑞)였다. 그가 집필한 《주기철 목사의 순교사와 설교집》(신앙생활사, 1958년)은 주기철 연구의 효시였고 그 뒤에 진행된 주기철 연구의 근거가 되었다. 그가 이 책의 부제로 삼은 ‘일사각오’(一死覺悟)는 이후 주기철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특히 그가 이 책에 수록한 주기철 설교 20편은 주기철 목사의 신앙과 신학을 규명하는 유일한 자료로 현재까지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후 전개된 주기철 연구는 큰 틀에서 김인서 벽을 넘지 못했다. 주기철 연구에서 김인서는 ‘절대 근거’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자료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료를 검토하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김인서가 활자화한 주기철의 설교가 하나같이 1954년 이후 복원된 것이라는 점이었다. 주기철 목사가 순교한 10년 후였다. 그리고 설교 복원 과정을 살펴보니, 대부분 설교가 일제시대(주기철 목사 생존 시) 주기철 목사가 설교할 때 현장에서 듣고 요약 메모해 두었던 것을 토대로 긴 본문을 완...
About 주기철: 사랑의 순교자주기철 목사 성역 100주년, 서거 4월 21일 기념 ‘사랑의 순교자’로 백 년의 주기철을 다시 쓰다! 기독교 역사학자 이덕주 교수는 지금까지의 주기철 연구들이 기자에 의해 현장에서 메모하여 복원된 설교문을 근거하여 이루어져 온 사실을 알고, 순교 전 간행된 신문과 잡지들을 찾아내 총 19편의 원사료들을 발견했다. 이 설교 원문들과 비교해 기존 설교들을 보니 일부 또는 결론이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기자에 의해 복원된 설교문은 강한 순교자적 이미지가 의도적으로 부각된 주기철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원사료들에서 읽은 주기철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이별을 슬퍼했던 평범한 성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다만 그 길을 가는 그에게는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고, 그분이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노력한 결론이 십자가 순교의 길이었다. 주기철 목사가 감옥 안에서 그 혹독한 고문을 견딘 것은 그의 강한 체력이나 불굴의 의지가 아니라 그와 함께하신 그리스도, 그 사랑의 힘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주기철』은 감리교 신학자이자 한국 교회사 연구 전문학자 이덕주 교수가 오랜 각고의 노력으로 빚은 노작으로, 주기철 연구 사상 처음 주기철 목사가 직접 말하고 쓰고 전한 원사료들을 찾아내 본연의 주기철을 조명한다. |
|
Support Info | jookicheol |